단순한 명품이 아닌 문화 및 예술계 발전을 선도하는 브랜드 Hermes
에르메스 전 회장인 장 루이 뒤마는 “에르메스 최초의 고객은 말이다. 말은 광고를 볼 줄도 모르고 세일이나 판촉 행사에 초대되지도 않는다. 오직 그들의 몸 위에 얹어진 안장이, 그들을 재촉하는 채찍이, 발에 신겨진 말발굽이 얼마나 편안하고 부드러운지에 따라 더 행복하고 더 잘 달릴 뿐이다.”라고 하며 마케팅이나 광고보다는 오로지 품질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에르메스의 철학을 표현했습니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프랑스 파리에서 안장과 마구용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탄생한 에르메스는 승마를 즐기는 왕족, 귀족 사이에서 초기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이후 1900년대 초반부터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 Emile Hermès)와 손자인 아돌프 에르메스(Adolph Hermès),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Emile Maurice Hermès)가 비즈니스에 합류하여, 여행용 가방, 실크 제품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가면서 장인이 만들어내는 높은 품질의 브랜드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에르메스는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주식회사에 소속된 것과 달리, 현재까지 6대에 걸쳐 가족기업의 형태로 사업을 이어나가며 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패션과 현대 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향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중심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경도 쉽게 할 수 없는 에르메스 켈리와 버킨백,
왜 사람들은 이토록 열광하는가?희소성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심리적 압박감입니다.한정된 수량과 기간, 리미티드 에디션 등으로 제한을 두는 희소성 마케팅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격차를 크게 벌립니다. 샤넬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가며 사람들은 오픈런을 해서라도 샤넬을 사는 희귀한 현상까지 생겨났습니다.명품 중의 명품이라 손꼽히는 에르메스는 루이비통, 샤넬도 따라올 수 없는 그 이상의 세계로 오픈런도 통하지 않습니다.
내가 돈을 쓰겠다는데도 팔지 않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도 사람들은 에르메스의 최소한을 생산하더라도 최고의 품질을 고집하는 철학과 이념에 더욱 열광하게됩니다.이러한 현상은 2019년 매출 3,618억원에서 2020년 4,191억원으로 전년보다 15.9% 오른것에서 확인 되고 있습니다.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에르메스는 여전히 브랜드가 만들어졌던 1837년의 그 때 그 초심을 유지하며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최소 5~7년 이상의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장인'만이 가방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특히 에르메스 중에서도 초고가 라인인 버킨백이나 켈리백은 교육과정을 마치고도 7~10년 정도의 경력을 쌓은 장인들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버킨백과 켈리백을 수년의 기다림 끝에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 가방을 만드는 공정을 분담하는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에르메스는 전 공정을 단 한 명의 장인이 전담하고, 한 장인이 버킨백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만 48시간입니다. 법정 근로시간 기준으로 한 사람이 일주일에 만들 수 있는 가방은 2개 수준이어서 생산량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에르메스의 선택을 받고 싶어 1년을 참새가 방앗간 들리 듯 에르메스 매장을 드나들며 구매실적을 채워도 켈리와 버킨백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는 후일담은 허다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힘들다는 켈리백은 역사가 화려합니다. 이전에 ‘쁘띠 싹 아 끄로와(Petit Sac A Courroie)’라고 불리던 켈리 백은 1935년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배우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는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나는 결백하다 To Catch a Thief>를 촬영한 후 에르메스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고 있는 사진이 ‘라이프(Life)’ 잡지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 백을 켈리 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고, 전 세계 잡지에 그녀의 사진이 등장하며 이 백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켈리 백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에르메스는 1977년에 공식적으로 켈리백으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버킨백이 실용적인 백 이라면, 켈리백은 모던하고 클래식한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에르메스 버킨백이 제인버킨에 의해 1980년대에 탄생하였고, 그보다 앞서 켈리백은 그레이스 켈리에 의해 1950년대에 탄생한 에르메스의 전통이 있는 백입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셀럽, 왕족들이 켈리백을 매며 에르메스의 명성과 입지를 단단히 굳혔습니다.